충렬사

경내안내

통영충렬사의 경내를 안내합니다.

경내안내

  • 홍살문紅箭門

    충렬사의 여섯 개의 문 가운데 첫째 문이다. 홍전문(紅箭門)이라 쓰고 홍살문이라 읽으며 때로는 홍문(紅門)이라고도 하는데 붉은색이 악귀를 물리치고 화살과 삼지창은 악귀를 공격한다는 의미가 있어 신성시되는 장소를 보호한다는 상징성이 있다. 정2품 이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만 세울 수 있다.

  • 정문正門

    홍살문다음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첫 출입문이다. 삼문구조인데 양편의 협문은 출입구이고 가운데 문은 신문(神門)이라 하여 제삿날에 열어 신을 맞아들인다.

  • 강한루江漢樓

    1840년(헌종6)건립. 제 172대 통제사 이승권이 건립하고 강한루(江漢樓)라 현판을 걸고 누각 이면에는 영모문(永慕)이라 현판을 걸었다.

  • 유물전시관

    1981년 건립. 통영충렬사팔사품, 어제사제문, 제례홀기, 충무공전서 등 충무공이순신관련 유물 및 통제영 기록 물품인 수조도병풍이 전시되어 있다.

  • 외삼문外三門

    정문에서 사당에 이르는 세 개의 문 중 첫 번째 문으로 좌·우에 위치한 비각과 조화를 이뤄 조형미가 빼어난 건축물로 손꼽히며, 광복 후 대한민국 우표도안으로 사용 되었다.

  • 경충재景忠齎 - 충렬서원忠烈書院

    1695년(숙종21) 건립. 제70대 통제사 최숙이 건립한 서원으로 지방민의 자제들에게 학문과 충의를 가르치던 곳으로 충렬서원이라불렀다. 1865년, 1867년 두 번에 걸친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존속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 숭무당崇武堂

    1695년(숙종21) 건립. 제71대 김중기 통제사가 건립하고 통제영에서 장교 2명을 파견 근무시켜 충렬사 제향 및 재산관리를 하였다.

  • 동재東齋

    1670년(현종11년) 제 51대 김경(金鏡) 통제사 건립. 사당 동쪽에 위치한 건물로 제례를 앞두고 제관들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의복을 갖추어 입는 곳이며, 제사를 끝낸후 여기에서 음복(飮福)을 한다.

  • 서재西齋

    1670년(현종11년) 제 51대 김경(金鏡) 통제사 건립. 사당 서쪽에 위치한 건물로 제례에 사용될 제물과 제사용품을 보관하는 곳이다.

  • 내삼문內三門

    1606년(선조39)건립. 정문에서 사당에 이르는 세 개의 문중 가장 안쪽의 문으로 단아하고 정교한 건축양식은 조선중기 삼문조형의 정수로 평가되고 있다. 통용문인 양쪽 협문을 낮게 만든 것은 몸을 낮추고 삼가는 몸가짐으로 출입하기 위함이다.

  • 정당正堂 또는 사당祠堂

    1606년(선조39)건립. 충무공 이순신의 신위를 봉안하고 제사를 봉행토록 하라는 선조의 명에 의해 제7대 통제사 이운룡이 건립. 건물 정면에 제 187대 통제사 신관호가 쓴 주련과 문정공 송준길이 쓴 사액현판이 걸려있고 내부에는 위패와 함께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비석안내

  • 충렬묘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13호.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무훈과 충절에 관한 내용을 담은 비로 공이 순국한지 16년 후인 광해 6년에 이항복이 왕명을 받아 비문을 짓고, 그로부터 67년 후인 숙종 7년 송시열이 그간의 경위를 비문말미에 첨언, 김수항이 비머리에 [통제사충무이공충렬묘비명] 이라 전서한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참여하여 세운 비 이다.

  • 제111대 통제사 이언상 사적비

    제 111대 통제사 이언상(李彦祥)은 덕수이씨 충무공파의 직계 손 가운데 처음으로 통제사가 된 분으로 재임 중(영조21년) 선대 이충무공을 본받아 군선관리와 갑병에 큰 공적을 남겼다. 늘 군부개혁에 여념이 없고 청렴결백하였다.

  • 덕수이씨 직계후손 통제사 5위 공적비

    ①가선대부 삼도수군통제사 이태상(李泰祥) 거사비
    ②가선대부 삼도수군통제사 이한창(李漢昌) 영세불망비
    ③가선대부 삼도수군통제사 이한풍(李漢豊) 영세불망비
    ④가선대부 삼도수군통제사 이항권(李恒權) 영세불망비
    ⑤가선대부 삼도수군통제사 이승권(李升權) 거사비
    ※ 가선대부(嘉善大夫) : 종2품의 품계, 왕실종친과 문무관에게줌
    거사비(去思碑)·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 재임때의 공적을 새긴비

  • 제70대 통제사 최숙 사적비

    제 70대 통제사 최숙(崔橚)은 우암 송시렬 선생의 문하생으로 조선 영조 때에 삼도수군통제사로재임(1694.8~1695.8)하여 병선건조와 군율정비 및 충렬사보수에 크게 힘쓰셨다. 통제사로 도임한지 삼일만에 충렬사를 참배하고 풍우(風雨)에 심히 퇴락한 사우를 다시 정비 하였다.

  • 제7대 통제사 이운룡 기적비

    제 7대 통제사 이운룡(李雲龍) 재임시(1603.2~1605.9) 선조의 명을 받아 이곳 통제영 서문밖에 통영 충렬사를 창건(1606)하였다. 시호는 식성군(息城君), 경북 청도에서 출생하여 24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냈다. 이충무공과 함께 함경도시전부락전투에 참전한 바 있고 31세에 옥포만호로 재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풍비박산된 경상우수군을 재건하여 원균우수사를 보좌하고 전라좌수사 이순신장군과 더불어 여러 해전에서 왜적을 물리쳐 크게 무공을 세웠다. 정유재란때에는 육전에서도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으로 책훈(策勳:공이인정됨)되고 전란 후 에는 비변사 당상관을 거쳐 제7대통제사로 제수(除授)되었다. 문집으로는 조선수군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인 거영일기(居營日記)·계보등록(啓本謄錄)을 남겼고 경남의령군기강서원(岐江書院)에 배향되어있다.

  • 제5대 통제사 유형 기적비

    제 5대 통제사 유형. 시호는 충경공(忠景公),명문가경원부사(府使) 용(溶)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세 살에 부친을 여의고 26세에 모친을 여의였다. 열다섯에 참의(參議) 조인(趙認)에게서 글을 배워 시문(詩文)과 사서(史書)에 통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휘하에 들어가 강화도에서 종군하였다. 29세에 무관별시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어 선조임금께서 탐라말(耽羅馬:제주산말)을 하사받고 진충보국(盡忠保國)하기로 맹세하였다. 훈련도감의 파총(把摠:종사품의무관)을 거쳐 해남현감이 되어 이순신장군께서 순직하신 마지막 노량해전에 함께 참전하여 6발의 적탄을 맞아 모두 살아나기 힘들 것 이라 하였으나 끝까지 전투를 지휘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부산진첨사에 특진되고 경상우수사를 거쳐 제5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이순신장군 생전에 통제사의 재목으로 낙점받은 문무겸전한 장군으로 문집으로는 석담유고(石潭遺稿)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