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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단법인 통영충렬사  (財團法人 統營忠烈祠: 사적제236호)
  삭제버튼 통영 충렬사는 1606년 창사(創祠) 이래 역대 통제사가 관리해 왔으나 1895년 군제 개혁에 따라 통제영이 폐영되 고, 1910년 경술국치(한·일 병탄)를 거치는 동안 관리주체가 소멸되어 이충무공의 제향이 단절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1919년 삼일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이곳 유림들과 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충렬사영구보존회를 설립하여 폐허가
된 사우를 중수(重修)하여 제향의 맥을 이어가게 된 것이 현재의 재단법인 통영 충렬사의 전신이 된다.
  1951년 재단법인으로 승격된 이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향사를 받드는 일을 본지(本旨)로 하고 장군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위업을 선양하는 일을 본 재단의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다.
  춘·추향사(음력 2월 중정·8월 중정일), 탄신제(양력 4월 28일), 기신제(음력 11월 19일) 그리고 한산대첩고유제
(양력 8월 12일), 모두 다섯 번의 제향을 전통 유교법식에 따라 받들고 있으며 기신제 (忌晨祭: 돌아가신 날 제사)
는 부속사당인 착량묘에서 따로 올린다.
  소장 문화재로는 충렬사(사적236호) 외 충렬사팔사품(국가보물제440호) · 충렬묘비명(도지정문화재113호) · 동
백나무(기념물74호)와 그 외 충렬사제향홀기 · 수조도병풍·팔사품도병풍 · 이충무공전서 · 정조임금사제문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착량묘  (鑿梁廟: 경상남도 기념물 제 13호)
  재단법인 통영충렬사의 부속 관리사당인 착량묘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순국하신 이듬해에 공을 따라 종군
하였던 수군들과 이 곳 주민들이 뜻을 모아 초묘(草廟:초기사당)를 지어(1599) 공의 기신제(忌晨祭:돌아가신 날
의 제사)를 처음으로 올려 이충무공 사당의 효시가 된 유서 깊은 사당이다.
  1877년에 제 198대통제사 이규석(李奎奭)이 기와집으로 고쳐 짓고 착량묘(鑿梁廟)라 편액을 달았으며 이 때
호상재(湖上齋:서당)도 같이 지어 지방민의 자제들에게 공의 호국정신과 위훈을 배우고 본받게 하였다.
착량(鑿梁:판데목)은 멀리 임진란 이전부터 불리어 온 이 곳의 지명이며 육지와 미륵도 사이에 튼 물길에서 유래
되었다.
  이충무공의 장계‘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 의하면 공이 당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르신 날(1592. 음력 6. 2), 당포 앞 바다에서 약속했던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함대와 만나 합류함으로서 조선수군의 사기가 충천
하였고, 함께 이 곳 착량 앞 바다로 와서 하룻밤을 유진(留陣)한 다음 고성 당항포로 달려가 또 크게 왜적을 무찌
르셨다.
  1932년 이 착량에는 통영운하와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 건설되었고 충무대교(1967)와 통영대교(1998)가 각각
건설됨으로서 우리나라 유일의 3중입체교통망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특히 이곳의 빼어난 야경은 통영8경의 하나가 된다.
  이 착량묘는 매년 기신제(음력 11월 19일)와 두번의 절사(節祀: 설· 추석)를 받들고 있다.